팽창하는 서울, 무너지는 경계
시간이 흘러 한강 변의 작은 촌락은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가 되었습니다.
사람과 돈이 쉴 새 없이 몰려들자, 도시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밖으로 팽창하기 시작했죠.
서울의 좁은 테두리를 넘어 외곽으로 사람들의 욕망이 뻗어나갔습니다.
조용히 농사를 짓던 외곽 지역 땅에 뜬금없이 매연을 뿜는 공장이 들어서고,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옆에 모텔과 식당이 우후죽순 생겨났습니다.
1장에서 이루어냈던 위대한 분리, ‘도시’와 ‘비도시’의 경계가 무참히 깨져버린 겁니다.
땅에게 4개의 이름표를 달아주다
“안 되겠다! 이 좁은 국토를 이대로 방치하면 서울 주변은 온통 난개발이 되고, 우리가 먹을 쌀도, 쉴 수 있는 숲도 다 사라지고 말 거다!”
결국 국가가 나섰습니다.
수도권이라는 거대한 지도를 쫙 펼쳐놓고, 땅의 쓰임새를 엄격하게 법으로 정해버리는 강력한 사회적 약속을 맺게 됩니다. 우리는 이 거대한 룰을 ‘도시관리계획’이라 부릅니다.
내용 및 제도화 : 4용도의 탄생과 수도권 지도
국가는 가장 먼저 땅을 4가지 색깔로 나누어 굵직한 테두리를 쳤습니다.
- 도시지역 (욕망의 용광로)
“서울 한복판을 봐! 여긴 이미 사람들이 바글바글 뭉쳐 살잖아? 생활과 경제의 중심지니까, 여긴 위로 높게 지어서 집중적으로 개발하자!”
- 농림지역 (우리의 식량 창고)
“그렇다고 모든 땅에 콘크리트를 부을 순 없지. 저기 인천 강화도의 끝없이 펼쳐진 비옥한 평야를 봐. 여긴 함부로 파헤치지 말고 영원한 식량 창고로 놔두자!”
- 자연환경보전지역 (국토의 허파)
“개발도 좋지만, 후손에게 물려줄 생태계도 필요해. 갯벌이 살아 숨 쉬는 서해안 일대나, 깊은 산속의 맑은 물줄기 주변은 국토의 허파니까 절대 건드리지 마!”
- 관리지역 (치열한 눈치싸움의 대기실)
“그런데 서울과 맞붙어 있는 경기도의 애매한 땅들이 문제네?
당장 아파트 숲으로 만들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농림지역처럼 꽁꽁 묶어두기엔 아까운 땅들. 여긴 잠시 대기실처럼 두고 상황을 보면서 철저히 ‘관리’하자!”
도시 안에서 벌어지는 또 다른 전쟁
이렇게 해서 서울(도시) – 외곽(관리) – 논과 밭이 있는 변두리(농림) – 해안과 산맥(자연환경)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4가지 색깔의 밑그림, ‘4용도’가 완성되었습니다.
자, 큼직하게 땅의 역할을 나눴으니 이제 진짜 평화가 찾아왔을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도시지역(서울)’ 안에서, 전보다 훨씬 치열하고 잔인한 영토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누구는 초고층 빌딩을 올리는데, 왜 내 땅에는 4층짜리 빌라밖에 못 짓는 거야!”
이 억울함을 달래고 복잡한 욕망을 통제하기 위해, 사람들은 이 4개의 덩어리를 9개의 조각으로 더 섬세하게 쪼개기 시작합니다.
땅의 가치, 즉 ‘돈’을 결정짓는 그 잔인하고도 매혹적인 9개의 운명.
다음 장에서는 그중에서도 우리가 매일 먹고 자는 곳, 평창동 저택과 강남 아파트 단지에 얽힌 ‘주거지역’의 은밀한 계급 이야기가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