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안식처, 다른 욕망
4가지 색깔로 국토의 밑그림을 그렸지만, 가장 인구가 빽빽한 서울(도시지역) 안에서는 매일매일이 전쟁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고된 하루를 마치고 돌아갈 ‘주거지역’의 다툼이 가장 심했죠.
“퇴근하고 좀 쉬려는데, 1층 상가에서 밤새 고기 굽는 냄새가 올라와서 살 수가 없네!”
“아니, 우리 동네는 어떻게 된 게 슈퍼 하나 가려면 차를 타고 나가야 해? 너무 불편하잖아!”
사람들은 깨달았습니다. 모두가 ‘똑같은 형태의 안식’을 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요. 누군가는 완벽한 고요함을 원했고, 누군가는 집 앞에 편의점과 학원이 있는 편리함을 원했습니다.
주거지역에 매겨진 은밀한 계급표
결국, 사람들은 생활 방식과 욕망에 따라 주거지역을 더 날카롭게 쪼개기로 약속합니다. 단순히 ‘집 짓는 땅’이 아니라, 전용, 일반, 준주거라는 3개의 큰 덩어리와 그 속의 1, 2, 3종이라는 은밀한 계급표를 달아준 것입니다.
아파트와 빌라의 운명을 가르다
1. 전용주거지역 : “내 집 앞엔 슈퍼도 안 돼!” (완벽한 성역)
오직 주거의 평안함만을 위해 모든 상행위를 차단한 곳입니다.
- 제1종 전용주거: 한강을 굽어보는 한남동 UN빌리지나 평창동, 성북동의 마당 넓은 단독주택들을 떠올려 보세요. 이곳은 오직 ‘단독주택’을 위한 가장 조용하고 쾌적한 땅입니다.
- 제2종 전용주거: 단독주택은 아니지만, 공동주택 중에서도 낮고 조용하게 짓는 땅입니다.
2. 일반주거지역 : “적당히 편리한 게 최고지!” (대중의 보금자리)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동네입니다. 집 근처에 세탁소, 학원, 편의점이 어우러져 있는 편리한 곳이죠. 하지만 이곳은 ‘건물의 높이(층수)’에 따라 철저하게 계급이 나뉩니다.
- 제1종 일반주거 (4층 이하): “햇빛을 가리면 안 돼!” 엘리베이터 없는 다세대, 연립주택(빌라)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정겨운 동네입니다.
- 제2종 일반주거 (중층): 적당한 높이의 아파트를 지을 수 있는 보편적인 땅입니다.
- 제3종 일반주거 (고층): 강남 대치동이나 목동의 빽빽하게 솟아오른 고층 아파트 단지들! 용적률을 듬뿍 받아 수십 층으로 건물을 쫙쫙 뽑아올릴 수 있는, 시행사들이 가장 탐내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입니다.
3. 준주거지역 : “집도 짓고 장사도 하고!” (화려한 혼혈)
주거와 상업의 성격을 모두 가진 카멜레온 같은 땅입니다. 도심 한복판에 화려하게 솟아있는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들이 바로 이 준주거지역이라는 요술 램프 위에서 탄생합니다.
돈 냄새를 쫓는 상인들의 땅
결국, 강남의 화려한 타워팰리스도, 평창동의 고요한 회장님 저택도, 내가 사는 동네의 4층짜리 빨간 벽돌 빌라도 모두 이 ‘땅의 이름표’가 운명을 결정지은 것이었습니다.
자, 주거지역의 교통정리가 끝났으니 드디어 평화롭게 잠을 잘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날이 밝으면 사람들은 돈을 벌러 나가야 합니다.
한강 변 최고의 노른자위.
명동의 불야성과 여의도의 마천루, 돈 냄새가 진동하는 그곳에는 과연 어떤 이름표가 붙어있을까요?
자본주의의 거대한 심장, ‘상업지역’의 치열한 자리다툼 이야기가 다음 장에서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