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불빛 뒤에 가려진 땀방울
상업지역에서 사람들이 화려하게 돈을 쓰고 즐기는 동안, 도시의 한구석에서는 끊임없이 망치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우리가 입는 옷, 타는 자동차, 매일 쓰는 스마트폰이 하늘에서 뚝 떨어질 리 없으니까요.
누군가는 시끄러운 기계를 돌리고 쇳물을 녹여야만 도시는 굴러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자기 집 옆에, 혹은 번듯한 백화점 옆에 시끄럽고 냄새나는 공장이 들어서는 것을 원치 않았죠.
굴뚝과 집은 함께 있을 수 없다
“일자리와 공장은 도시의 피와 살이다. 하지만 주거지와 섞이면 끔찍한 고통이 된다. 공장들만 마음 편히 기계를 돌릴 수 있는 그들만의 구역을 만들어주자!”
그렇게 사람들은 도시 외곽과 강줄기를 따라 묵묵히 땀 흘릴 수 있는 ‘공업지역’을 3가지 계급으로 나누어 떼어주었습니다.
공업지역의 3가지 얼굴
- 전용공업지역 : “우린 좀 무겁고 시끄럽다!”
매연이 펄펄 나고 쇳물이 끓는 중화학 공장들의 땅입니다. 당연히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서울 한복판에는 둘 수 없겠죠? 인천의 남동공단이나 저 아래 울산, 포항의 거대한 산업단지처럼, 오직 공장들만을 위해 격리된 강력한 생산 기지입니다.
- 일반공업지역 : “환경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뚝딱뚝딱!”
심한 매연이나 폐수는 나오지 않는 일반적인 제조업을 위한 땅입니다. 과거 서울의 ‘구로공단’을 떠올려 보세요. 미싱(재봉틀) 소리가 밤낮없이 울리던 그곳은, 훗날 삐까뻔쩍한 벤처 타워들이 들어선 ‘구로디지털단지’로 진화하게 됩니다.
- 준공업지역 : “공장과 아파트와 카페의 화려한 동거!”
가장 재미있는 땅입니다. 원래는 가벼운 경공업 공장들이 있던 곳인데, 시간이 흐르면서 공장 근로자들이 먹고잘 집(주거)과 상가(상업)가 자연스럽게 섞이도록 법으로 허락해 준 곳이죠.
서울 성수동을 아시나요? 옛날 구두 공장과 인쇄소가 다닥다닥 붙어있던 이 낡은 준공업지역에, 어느 날 공장을 개조한 힙한 카페와 팝업스토어가 들어서고, 그 옆엔 수십억 원짜리 초고층 갤러리아 포레 아파트가 올라갔습니다. ‘준공업지역’이라는 유연한 이름표가 만들어낸 놀라운 마법입니다.
도시가 질식하지 않는 이유
자, 주거, 상업, 공업까지 도시의 핵심 기능이 모두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집도 짓고, 백화점도 짓고, 공장도 지었으니 이제 정말 끝일까요?
만약 이대로 모든 땅을 콘크리트로 덮어버린다면, 도시는 숨이 막혀 죽고 말 겁니다. 아무리 비싼 땅이라도, 우리는 의도적으로 빈 공간을 남겨두어야만 했습니다.
도심 한가운데 남겨진 최후의 푸른 땅. 도시의 여정을 마무리할 마지막 퍼즐, ‘녹지지역’ 이야기가 지금 바로 이어집니다.